즐거운 소리들2007. 9. 18. 16:08


Una nueva mujer, 2005

방금 전에 비가 멈쳤다. 이틀 연속으로 비가 내리다니. 북경에서 참 흔치 않은 일이다.
특히 9월에 내리는 비라... 정말 지구가 이상해져 가는 것은 아닌지.
학교에 가는 날 보다 집에 있는 날이 많으니, 음악을 듣는 일이 예전 보다 많아진다.
비 오는 날에 메렝게의 여왕이라는 Olga Tañon의 노래가 어디 어울릴까 하지만,
그녀의 앨범 속에는 은근히 비가 오늘 날 들으면 좋을 법한 음악이 있다.


Olga Tañon, 1967년 푸에르토리코 출생. 1962년 Sola라는 앨범으로 가수 활동시작.
아래 두 곡은 그녀의 2005년 una nueva mujer 앨범 중의 두곡. Muero de Amor, Maldito Seductor

Posted by pekin
영화2007. 9. 18. 15:29
예전에 썼던 글 정리중...



Y tu mama también



중남미에 관심이 많은 유쾌한씨는 중남미 영화들은 웬만하면 다 보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조그맣게 열렸던 ‘라틴영화제’에 시험에 쫓기어 가보지 못한 유쾌한씨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이투마마 (Y tu mama también)>의 시사회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중남미 영화는 모두 정치영화라는 얘기도 있지만 헐리우드에서 성공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신의 고향인 멕시코를 배경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낼지 하는 순진한 호기심으로 시사회장을 찾았다. 첫 장면부터 당황하게 만드는 정사신....

알폰소 쿠아론은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문학적 소질이 다분히 있는 것 같다. 그를 스타 감독으로 - 해리포터 3편의 감독으로 선정됐으니 그는 분명 스타감독이다. - 만든 <위대한 유산>이나 이전에 그의 재능을 보여준 <소공녀> 모두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그런 그가 동생인 카를로스 쿠아론과 함께 <이 투 마마>의 각본을 써 2001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정도 되면 그를 문학적 감독으로 불러도 좋으리라. 그런데 미국을 무지 싫어하는 멕시코인들이 헐리우드의 스타 감독이 된 그를 어떻게 바라볼까. 그건 유쾌한씨도 모를 일이다. ^^ 적지에서 성공한 영웅으로 볼 수도 있구, 나라를 저버린 매국노라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을 눈앞에 두고 내놓은 <이 투 마마>는 그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다. 역시 그는 멕시코인 이다.

한 나라의 예술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보여주는 것만 느낄 수 있기도 하고 그 이상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이상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유쾌한씨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인가 알고 있을 때 그 이상 느낄 수 있을 가능성은 분명 커진다. 그런데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이 얘기는 멕시코 영화인 <이 투 마마>에도 해당된다. 정사신으로 영화를 여는 이 영화에 대해 성적담론으로 가득 찬 야한 영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성장 영화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정도로만 이해한다면 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유쾌한씨의 이런 생각이 남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읽으려는 억지로 여겨질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인식들이 이제껏 중남미 영화들을 정치영화로 둔갑시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쾌한씨는 <이 투 마마>에서 너무나 슬픈 멕시코를 보았다.

<이 투 마마 땀비엔 Y tu mama también>이라는 말은 “그리고 너의 어머니 역시”라는 뜻이다. 이 말만 가지고는 우리는 어떠한 얘기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는 여기에 이 말 저 말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말을 붙이냐는 각자가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이다. 이 말은 한없이 음탕하게 들릴 수도 있고 한없이 서글프게 들릴 수도 있다.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유쾌한씨는 제목만으로도 슬퍼진다.

절친한 친구인 테녹과 홀리오는 테녹의 사촌형의 부인인 루이사와 함께 갑작스런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지는 그들도 알지 못하는 “천국의 입”. 알지 못하는 곳이기에 여행은 그들이 가는 길이 어디인지 조차 모른다. 그냥 가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가다 자신들도 모르게 도착한 곳이 바다이고 원주민 가이드의 도움으로 우연찮게 천국의 입에 가게 된다. 테녹과 홀리오가 루이사를 꼬시기 위해 가상으로 만들어낸 장소가 현실로 닿게 된다. 가상과 현실은 무의미하며 그곳에는 배관광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원주민이 있다. 천국의 입까지 다녀온 그들은 해변으로 쳐 놓은 텐트로 돌아온다. 그런데 텐트는 돼지들로 엉망이 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원주민 가이드의 집에서 묵게 되는데.... 어차피 텐트란 임시적인 거처가 아닌가. 중남미 문학에서 심심찮게 쓰이는 돼지가 망쳐놓았다는 사실이 재밌긴 하지만 말이다.

원주민 가이드의 집에서 일박을 하게 된 그들은 진탕 술을 마시면서 화해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테녹과 홀리오는 서로의 애인을 범했다는 사실에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셋은 방으로 들어가 섹스를 하게 되는데 이 장면이 압권이다. 이 부분을 묘사한다는 것이 참으로 껄끄러운데 심의를 통과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많이 관대해지긴 해졌나 보다. 이 섹스는 동성과의 관계이자 이성과의 관계이다. 즉, 테녹과 홀리오와의 관계이자 테녹과 루이사, 홀리오와 루이사의 관계인 것이다. 마치 마술적인 꿈같다.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로 돌아오지만 말이다. 이 장면에서 유쾌한씨는 멕시코의 국기가 생각났다. 삼색기에 하얀색으로 된 가운데 부분에는 독수리가 뱀을 물고 피를 흘리는 멕시코의 국기.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유쾌한씨는 차파티스타민족해방군(EZIN)에 대해 얘기할까 한다. 멕시코 남부에 원주민들이 주로 사는 치아파스 주가 있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멕시코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그저 착취만 당할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는 허상이다. 멕시코의 원주민은 슬프다.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영화 속에서 가벼지만 느낄 수 있다.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검열이 심해지는 군인들, 마치 우리의 옛 군사정권을 보는 듯 하다. 그나마 우린 행복하다.

사족 : 차파티스타 민족 해방군의 부사령관이 쓴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책이 해냄 출판사에서 올해 출간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지한 중남미의 멕시코, 그 안의 차파티스라는 곳에 시선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pekin
영화2007. 9. 18. 15:24

예전에 썼던 글 정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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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을 봤을 때,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을 할까 하는 의심을 했다. 중남미에 관심이 많은 유쾌한씨는 꼭 보고 싶었으나 개봉을 안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영화들이 수입되고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다. 솔직히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나마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많아져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지만 말이다. 어쨌든 불행 중 다행으로 <프리다>는 한국에 수입되어 개봉되었다. 물론 그 전에 어렵게 구한 DVD로 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프리다>가 한국에서 개봉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영화는 산업이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프리다>가 한국에서 개봉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대형 서점을 한 번 둘러보면 대충 감이 잡힌다. 그냥 일반인들을 붙자고 물어보자. “중남미 화가 중에 아는 사람 있으세요?”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이나 있을까. 유쾌한씨도 마찬가지지만 중남미에 거의 무지몽매하니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서점에 가면 잘 보이는 곳에서 프리다 칼로에 관한 책을 찾아 볼 수 있다. 소설 같은 그녀의 삶은, 한국에 많이 소개되었고, 감동과 삶에 대한 성찰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조금 상업적으로 얘기하자면, 팔릴만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출판사들도 땅 파서 책 내는 것 아니니, 이윤에 전혀 무관심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 덕택에 그나마 프리다 칼로는 한국에서 많이 알려졌고, 소수의(?) 팬 층을 확보하였다.(유쾌한씨도 그 중 한명이다.) 이런 기반 속에서 영화 <프리다>는 한국에 수입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지금 유쾌한씨는 영화 얘기는 안 하고 약간 잡다한 얘기를 하고 있다. 왜? 솔직히 전기영화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전기영화의 경우 영화화 하는 대상에 기대기 때문에 졸작의 수준은 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보다 영화를 더 극적으로 만들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에 명작의 대열에 끼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범작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프리다>도 그렇다. 프리다 역을 맡은 셀마 헤이익이 정말 프리다 칼로와 닮기는 했지만, 열연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관객들이 느끼는 감동의 수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유쾌한씨가 봤을 때는 아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은 영화에서 보여 지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감독의 문제이겠지만, 이 영화는 프리다 칼로가 삶에서 느꼈을 처절함이 없다. 그녀의 작품을 볼 때 느껴지는 계속해서 추락하는 듯한 절규가 없다. 그러니 이 영화의 감독인 줄리 테이머 보다 프리다 칼로가 더 유명한 것이겠지만.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미국 미술 경매 시장에서 중남미 화가들 중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품이다. (이러니 영화가 만들어졌겠지만.) 이러한 사실로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 보다 더 유명한가 보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가 예술적으로, 중남미 미술계에 끼친 영향력으로나 프리다 칼로 보다 더 큰 존재이지만, 디에고 리베라의 주요 작품들은 벽화이니 그것을 띠어다가 팔수는 없으니까. ^^. 이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것들이냐면 프리다 칼로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보여 지는 디에고 리베라의 삶이다. 프리다 칼로의 삶에 매혹되어 디에고 리베라는 바람둥이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물론 진짜 바람둥이기는 했지만. 록펠러 빌딩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아들인 것도 웃기는 얘기였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으로 고취되었던 미국에 가서 활동을 하고, 록펠로 빌딩에 혁명적 그림을 그리려 했던 것도 참 재밌는 일이 아닌가. 디에고 리베라의 삶과 함께 또 눈여겨 봐야할 것은 당시 멕시코의 역사적 상황이다. 언제 멕시코가 사회주의 국가였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남미의 대부분 국가들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었으며, 멕시코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시기 우리나라 대사관은 중남미 없었고, 북한 대사관이 있었다. 오늘날은 그 반대지만. 어쨌든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역사적 상황들은 일면적으로 사실이긴 하지만 별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프리다 칼로의 삶은 당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 프리다 칼로도 디에고 리베라도 머리 보다는 가슴으로 움직이던 사람들이었지만.

<프리다>, 영화로 봤을 때 수작이라고 할 수 없지만 즐기고 생각할 만한 영화다.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유쾌한씨는 영화보다는 프리다 칼로를 만나는 재미에 유쾌했었으니까.

Posted by pe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