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들2007. 10. 13.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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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 카이거(陳凱歌,1952.8.12-)

 

 

첸카이거는 장이모우와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 중에 하나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장이모우 보다는 첸카이거를 좋아한다. 첸카이거는 한 때 지나치게 문화혁명 시대에 집착한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면이 그의 매력이다. 그는 문화혁명 때 홍위병으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며, 장이모우처럼 하방의 경험도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방이란 모택동이 문화혁명 시기에 광분에 빠진 홍위병들을 인민으로 배워야 한다는 명분 아래 지방으로 보낸 것을 의미한다.) 그는 초기 3부작 <황토지 黃土地>(1984), <대열병 大閱兵>(1985), <아이들의 왕 孩子王>(1987)을 중국 현대사에 대한 지적인 접근을 하였다.

 

그의 초기 3편의 작품 중에서 그의 데뷔작인 <황토지>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1939년 팔로군의 한 병사가 민요를 수집하기 위해 산시성의 한 마을에 도착한다. 이후 한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이 병사는 그 소녀에게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는 연안에서 여성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얘기를 해준다.  이 얘기를 들은 소녀는 병사에게 자신을 연안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병사는 군대의 규율을 이유로 거절한다. 하지만 상부의 허락을 받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소녀 곁을 떠난다. 이후 소녀는 연안으로 가기 위해 채비를 하고 마을을 떠나며, 공산당에 대한 찬가를 부른다. 하지만 소녀가 부르는 노래는 마을이 물에 잠기는 소리에 점점 작아지고, 끝내 사라져 버린다. 공산당에 대한 축가가 점점 희미해져,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도 당시 중국 공산당의 거점인 연안으로 가는 시점에서 말이다. 병사가 소녀에게 약속을 하고 떠날 때, 소녀는 병사에게 묻는다. 군율을 바꿀 수없느냐고, 하지만 한낱 병사에게 그런 힘이 있겠는가. 결국 가서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를 세계적으로 알린 <패왕별희>로 넘어가 보자. <패왕별희>는 로맨스를 담고 있는듯 하지만,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들의 광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홍위병들의 광기 이면에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그 이데올로기는 바로 중국 공산당에 있다. 첸카이거는 직접적으로 그런 면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영화를 통해 말없이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첸카이거는 초기 3부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96년 작품인 <풍월>은 첸카이거가 형식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게 했다. 하지만 옴니버스 영화 <텐미니츠 트럼펫>의 마지막 편과, <투게더>에서 보여준 그의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는 중국의 현재 모습에 접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찾으려 한다. 물론 최근 그의 작품들은 초기작에서 보여주던 거장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초기 3부작과 <패왕별희> 이후, 상업적으로 돌아섰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세계는 중국으로부터 멀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 그는 초기의 모습에서 보여주던 무거운 목소리가 아닌 보다 가벼운 목소리로 중국을 보여주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그의 변화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의 변화가 긍정적이라면, 그는 세계적인 감독임은 물론 중국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p.s  누가 중국 공산당의 연안시대부터 문화대혁명 시기의 영화는 '무'라고 얘기했던가. 그 말을 완전히 긍정할 수 없지만, 이데올로기가 쓸어 버린 것은 참 많다. 그들이 말한 신성한 혁명이 파괴한 것도 참 많다. 그러기에 <황토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중국영화를 세계에 알린 것도, 알린 것이 겠거니와 혁명 시대의 영화에도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으니 말이다. <황토지>에서 자주 보이는 깊은 원근감이나 긴 호흡은 혁명의 미학 보다 전통 미학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고 할까.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기법 별로 안 좋아 하지만.

그런데 이런 영화 찍었던 첸카이거가 요즘은 자신의 명성에 대한 중압감이 큰 듯 한다. 자유를 말하고 싶었다는 <무극>만 봐도 그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갈 정도이니까. 그에 반면 장이모우는 잘 나가듯 싶다. <무극>과 비슷한 시점에 개봉한 <천리주단기> 호평을 받은 것도 그렇고, 최근 2008 북경올림픽 총감독을 맡은 것도 그렇다. 물론 <무극>은 흥행에 성공했고, <천리주단기>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요즘 첸카이거와 장이모우를 보면 <황토지>를 같이 찍었다는 사실이 참 재밌게 다가온다.

 

 

by 유쾌한씨

Posted by pekin
영화2007. 10. 13.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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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모우 張藝謨, Yimou Zhang

 

 

(1951.11. 14-)


 중국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독은 장이모우와 첸카이거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이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 아니듯, 장이모우 첸카이거도 마찬가지다. 이 둘은 중국 영화계에서 크게 평가를 받으면서도, 대중들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국적인 소재를 다루는 그들의 영화들이 중국대중들에게는 지루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상을 타기 위해 일부러 중국적인 것을 골라 만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임에는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이번 호에서는 장이모우에 대해서, 다음 호에서는 첸카이거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장이모우는 문화혁명의 여파로 산시성 농촌의 한 공장에서 10여년을 보냈다. 문화혁명 때 해방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직까지 농촌에 남아있었지만 그는 1978년 북경전영학원에 입학했다. 이후 첸카이거의 초기작 <황토지>와 <대열병>등에서 촬영감독을 맡으며, 영화계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수수밭>(1987년)이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타면서 세계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한다. 문화혁명의 혼란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내용적인 면보다도 붉은색으로 일관된 영상미를 강조한 영화다. 색에 대한 그의 감각은 <홍등>, <영웅>에서 큰 두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붉은 수수밭> 이후 지나친 형식미에 치우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후 대표적인 감독들이 보이는 현상 중에 하나다. 일종의 거작과 거장에 대한 강박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장이모는 형식적인 미를 탈피해 <귀주이야기>와 <인생> 등을 제작한다. 이 두 작품은 그가 미시적인 눈을 가지고 중국의 현실에 다가간 작품들이다. <인생>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타면서, 그는 3대 영화제 모두 석권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그는 다시 한 번 전환기를 맡는데, 그 전환기에 있는 작품이 <와호장룡>과 <영웅>이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보여지듯, 영상미를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보여주는 영상미는 중국의 전통적인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 장이모가 보여주는 세계가 중국적인가 하는 사실이다. 그가 그리는 중국적인 세계는 현실을 사는 중국인들의 세계가 아니라,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중국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그를 거장이라 할 수 있지만, 그가 보여주는 세계가 포장된 세계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와호장룡>의 경우는 깊은 철학을 보여준다고 얘기하지만, 그 철학은 누구에게 있는 것 인가. 그 철학이 중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세계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의 영화를 볼 때 주의해야 할 사실 중에 하나이다.


 

2005. 3 by 유쾌한씨

FILMOGRAPHY



배우  
 
1. 유화호호설 (有話好好說, 1997)
2. 진용 (秦俑, 1989)… 몽천방 역
3. 붉은 수수밭 (紅高梁, 1988)
 


감독

1. 단기,천리를 달리다 (單騎, 千里を走る, 2005)
2. 연인 (十面埋伏, 2004)
3. 영웅 (英雄, 2002)
4. 행복한 날들 (幸福時光, 2001)
5. 책상서랍 속의 동화 (一個都不稜少, 1999)
6. 집으로 가는 길 (我的父親母親, 1999)
7. 유화호호설 (有話好好說, 1997)
8. 뤼미에르와 친구들 (Lumière et compagnie, 1996)
9. 인생 (人生, 1995)
10. 트라이어드 (搖?搖, 搖到外婆橋, 1995)
11. 귀주이야기 (秋菊打官司, 1992)
12. 홍등 (大紅燈籠高高掛, 1991)
13. 국두 (菊豆, 1990)
14. 대호미주표 (代號美洲豹, 1989)
15. 붉은 수수밭 (紅高梁, 1988)
 
 
 제작  
 
1. 단기, 천리를 달리다 (單騎, 千里を走る, 2005)
2. 연인 (十面埋伏, 2004)
3. 영웅 (英雄, 2002)
 
 
 각본  
 
1. 단기, 천리를 달리다 (單騎, 千里を走る, 2005)
2. 연인 (十面埋伏, 2004)
3. 영웅 (英雄, 2002)
4. 화혼 (畵魂, 1993)
 
 
 촬영  
 
1. 대열병 (大閱兵, 1986)
2. 황토지 (黃土地, 1984)

Posted by pekin
영화2007. 9. 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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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거리를 하루만 걸어도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정말 자전거가 많다는 것이다. 자전거는 중국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모습 중에 하나다. 물론 중국 전역에서 자저건가 애용되고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이다. 또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자전거가 애용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에도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북경의 예를 들자면, 자전거를 타고 어딜가는 도중에 오르막길을 한 번 만날 수 없다. 그만큼 자전거가 편리하게 이용될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전거는 중국 60∼70년대에 중산층을 상징하는 부의 척도이기도 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에 따라, 자전거는 더이상 부의 척도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마이카 시대로 급속하게 진입하고 중국. 자전거는 더이상 부의 척도를 상징하지 않지만, 여전히 빈부의 격차를 싣고 달린다. 그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왕 샤오슈웨이 감독의 <북경자전거 十七歲的單車, 2001>이다.
 
시골 소년 ''구웨이''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베이징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베이징에 도착후 그는 택배회사에 취직하여 배달원의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일을 위해 회사는 6백위안짜리 자전거를 그에게 대여해준다. 비록 학업을 계속할 수 없지만, 일자리를 구해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는 설레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열심히 일을 해 나간다. 고생 끝에 자전거 가격에 해당하는 6백위안 거의 모았을 무렵, 그는 자전거를 잃어 버리게 되고 절말에 빠진다.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이 절망이 찾아든 것이다. 그는 그의 자전거를 찾기 위해 북경 전역을 뒤지고, 결국에는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한 소년(지안)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목격한 그 소년은 불량스럽기 그지 없어, 접근하기 조차 힘들다. 구웨이는 결국 그 소년의 주위를 배회하다가 자신의 자전거를 재차 훔치게, 아니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훔치는 도중 그 소년에게 잡히게 되고 몰매를 맞는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자전거를 지키기 위해, 구웨이는 계속해서 자신의 자전거라 주장한다. 이러한 실갱이 속에서 불량 소년 지안과 구웨이는 번갈아가면서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같이 자전거를 사용하게 된다.

 <북경 자전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구웨이가 자전거를 잃어 버린 후, 택배회사 경리에게 자전거를 꼭 찾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회사 경리는 그에게 “도대체 북경에 자전거가 얼마나 많은 줄 아냐? 너는 현실을 모른다”라고 타박한다. 그렇다. 현재 중국은 사회주의라고 하기에는 낯뜨거운 빈부격차 때문에, 가난한 이들은 현실을 알 수 조차 없다. 하루는 필자가 북경의 거리를 걷다가 슬픔에 절규하는 신문 판매원을 보았다. 그가 화장실 간 사이가 그 파는 신문을 누가 훔쳐간 것이다. 중국에서 신문 1부는 한국 돈으로 60원에서 1백30원 사이다. 그렇다면 그가 잃어버린 신문의 액수가 고작 얼마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흐느껴 울었다. 그것이 바로 <북경 자전거>가 보여주는 중국의 현실인 것이다.

 

2005. 4 by 유쾌한씨

Posted by pekin
영화2007. 9. 2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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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er




굴뚝이 있는 조그만 목욕탕들, 어릴 적에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과 같이 집안에서 샤워하기 편치 않던 시절에 대중목욕탕은 서민들이 마음편히 씻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던 시절, 마음 놓고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는 곳은 바로 목욕탕 말고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보일러가 기름, 가스보일러로 바뀌면서 집안에서 샤워하기가 너무 편해졌다. 그런 편리함 이면에 조그만 목욕탕은 점차 사라져 갔고 말이다. 장양 감독의 <샤워 (2001)>도 이러한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선전의 한 자동 샤워 부스에서 한 사내가 샤워를 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사내는 북경에서 대중목욕탕을 하는 아버지를 둔 대명이다. 그는 어느 날 저능아 동생인 이명으로부터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있다는 엽서를 한 장 받게 된다. 아버지가 위급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 대명은 급히 비행기표를 끊어 북경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별일이 없다. 아버지가 무사하심을 본 후 선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북경에서 며칠 머물게 된다. 샤워는 그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준다. 중국의 후통에서 대중목욕탕을 하는 아버지와 선전에서 사업을 하는 큰 아들, 둘의 모습은 아버지와 아들, 중국의 과거와 현대를 대비시켜 보여 준다. 영화의 마지막은 후통이 철거되고 그곳에 아파트 건설계획에 따라 목욕탕이 철거되는 장면이다. 목욕탕에서 귀뚜라미 싸움을 하던 동네 노인들은 신식 아파트에서 귀뚜라미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한탄을 하고, 대명과 이명은 목욕탕의 간판을 떼어낸다.

중국에는 전자자동샤워부스나 허름한 대중목욕탕만 있을까. 그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1천원짜리부터 몇 만원이 되는 목욕탕까지 다양한 종류의 목욕탕들이 있다. 고급목욕탕의 경우는 심지어 식사가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기도 하다. <샤워 (2 001)>에서 보이는 대중목욕탕을 중국의 한 거리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지저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다. 하지만 그 지저분함이란 무엇일까. 영화의 장면을 빌려보자. 대명과 이명의 아버지가 죽은 아내를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그의 아내는 산서성 사람이었는데, 그곳엔 물이 귀해 평생 한 번, 결혼하는 날에만 목욕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장인어른은 딸의 결혼을 위해 곡식과 물을 바꿔 딸의 목욕물을 힘겹게 장만했다. 이것이 바로 과거의 모습이었다. 현실의 모습을 보자. 중국에 정말 많은 수의 사람들은 1년에 한번 18원짜리 카오야(북경식 오리요리) 한 마리를 먹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며 대략 2천원을 조금 넘는 돈이다. 시골에서 일을 찾아 북경으로 올라온 민공들의 생활, 그들의 슬픈 삶이 이러한 모습들에 담겨져 있다. 허름한 주택에서 공동생활을 하거나, 거리에서 하룻밤을 해결하는 민공들이 씻을 수 있는 장소란 대중목욕탕이 전부다. 그들에게 씻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목욕탕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이것은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또 하나의 중국의 모습이다.


2005. 5 by 유쾌한씨

Posted by pekin
영화2007. 9. 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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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 미니츠 트럼펫>은 세계 거장 감독들의 단편영화를 모아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고자 한 <텐 미니츠 올더>의 2부작 중 1부이다. <텐 미니츠 올더>는 짐 자무시, 빔 벰더스, 첸 카이거 등 7명의 거장이 참여한 <텐 미니츠 트럼펫>과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장 뤽 고다르 등 8명의 거장이 참여한 <텐 미니츠 첼로>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 유명한 거장들이 참여하다보니 기획에서 상영까지 큰 관심을 끌었지만, 상영된 이후 큰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이번에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텐 미니츠 트럼펫> 중에서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첸 카이거 감독의 깊이 감추어진 100송이 꽃 <100 flowers hidden deep>이라는 작품이다.

이미 첸 카이거 감독에 관해서는 그의 작품인 <패왕별희>, <투게더>를 얘기하면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텐 미니츠>의 마지막 작품인 <깊이 감추어진 100송이 꽃>은 그의 작품인 <투게더>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할아버지가 이삿짐센터 직원들 앞에 나타나 이삿짐을 날라 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직원들은 돈도 없어 보이는 늙은이의 말에 처음에는 모른 척 하지만, 돈을 지불할 수 있다는 말에 할아버지와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아무 것도 없는 벌판뿐이다. 아니 이전에는 있었지만 아파트 공사를 위해 모두 철거되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공터일 뿐이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할아버지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돌아가려 하지만, 사장의 헛걸음 하고 돌아가느냐 하는 전화에 보이지도 않는 이삿짐들을 나르게 된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할아버지의 심각한 모습에 낑낑대며 짐을 나른다. 짐을 다 나른 후 할아버지와 직원들은 차를 타고 보이지도 않는 집을 떠나 보이지도 않는 새로운 집을 향해 간다. 출발한지 얼마 안 지나, 할아버지는 이전에 있었던 구덩이를 조심하라고 하지만, 직원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차는 구덩이 빠지고,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예전 집에 달려있던 종을 발견한다. 그 종을 집에 달면서 영화는 한편의 동화처럼 이전의 집들이 판타지처럼 펼쳐진다. 그때, 직원들은 볼 수 없었던 예전의 집들을 보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까지 간단하지는 않다. 중국은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서 과거의 공간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겪은 모습과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사라져 가는 공간은 사라져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것을 잃게 하고, 우리 자신을 과거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다. 영화 속 할아버지처럼, 과거에 연연하고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정신병자로 취급받을지 모른다.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판타지 일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듯, 직원들은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한 상황 속에서 잊고 있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이자, 아직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Posted by pekin
영화2007. 9. 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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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씨는 장예모 감독의 <영웅>이 오기를 한참을 기다렸다. 드디어 어제 영화를 봤고 기다림에 대한 대답은 혼란스러움이었다. 영화에 대한 긍정과 부정 속에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영웅>은 “색 色”의 사용과 드러냄에 있어 너무나 탁월하면서도 전체주의의 가치와 단선적인 스토리라는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며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와호장룡>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유발시킨다. 이 속에서 어떠한 답을 내려야 하는 것인지, 유쾌한씨는 참으로 어지럽다.

영화를 “이미지의 예술이다.”라 말하고, “이미지는 색으로 만들어 진다.”라 말한다면, 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최고의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예모가 <영웅>을 통해 보여준 색은 정말 대단하다.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비판하는 사람들이라도 이 점은 인정할 것이다. <영웅>에서 보여지는 색, 정말 대단하다, 가슴 벅찰 정도로. 장예모가 펼치는 색의 향연 속에서 色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영화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색의 의미를 읽어나가는 과정이 <영웅>을 보는 과정이다. 그것이 종국에 이르러서는 감독이 규정하는 색의 의미를 드러내지만 장예모의 시각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 ( 물론 중국에서 이 영화는 대박을 터뜨렸고,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씁쓸. )

<영웅>의 색들은 무명(이연걸)과 진시황이 될 영정의 대화 속에서 드러난다. 영정을 시해하고자 했던 고수들을 해치우고 온 무명은 영정을 알현하게 되고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색의 향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영웅>에서 보여 지는 색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매우 유동적이다.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무영과 영정의 대화는 에피소드 단위로 진행되는데, 각 에피소드마다 색이 변화한다. 에피소드를 지나면서 인물들과 배경들은 黑, 赤, 靑, 綠, 白으로 갈아입는다. (순서는 무관합니다. ^^) - 영정은 항상 黑 이다. - 이러한 변화가 어지럽긴 하지만, 어지러움 속에서 색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준다. 고정관념이 깨져가는 과정을 인식하기는 어렵지만 색에 대한 읽기를 시도하는 순간 색에 대한 고정된 관념은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색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읽어내는 의미 속에 있는 것이다.

유쾌한씨는 <영웅>을 보는 동안 <영웅> 안에서 읽혀질 수 있는 색들의 의미가 그려졌다. 그러한 의미는 유쾌한씨式 읽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유쾌한씨처럼 자신 나름대로 <영웅>에서 보여 지는 색에 대한 읽기를 시도하지 않으면 장예모가 규정한 색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지 모른다. 이것은 매우 위험하며 읽기를 시도하는가의 여부는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에게 있다. 그래서 유쾌한씨는 <영웅>을 높게 평가한다. <영웅> 자신이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말이다.

“색色”, 이것은 <영웅>을 좋은 영화로 만들어 주고 있지만 이 부분만을 가지고 영웅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며 위험하다. <영웅>은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동일한 인물에 다른 색을 입힌다. 각각의 에피소드를 한 장으로 중첩시키면 내면의 충돌과 갈등이다. 하지만 중첩된 색들이 하나로 만들어질 때는 어떤 색일까. 바로 “검정”이다. 각 인물들은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진행될 때마다 다른 색을 보이지만 종국에는 영정이 변치 않고 지니는 색 “검정”이라는 얘기다. 영정은 훗날 진시황이 될 인물, 그가 상징되는 것은 곧 천하요 국가이다. 이 얘기를 좀더 다르게 하자면, 국민 개개인은 고유한 색을 띠며, 그 색은 상황과 시각에 따라 변하지만 그것이 하나로 묶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黑 이다. 그리고 다른 색들이 지니고 있는 변화로움에 비해 黑은 고정적이다.

장예모의 <영웅>은 영화로 드러낼 수 있는 색의 극치를 드러내면서, 영화 읽기의 풍성함을 자아내는 훌륭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훌륭함은 고정적이며 닫힌 시선 속에서 그 빛과 깊이를 잃었다.






by 유쾌한씨






Credit


 

Actor


 주연
이연걸  :  무명 역
장만옥  :  비설 역
양조위  :  파검 역
 
조연
견자단  :  은모장천 역
장쯔이  :  월 역
진도명  :  진왕 영정 역
 
 
 
 Step
 
 연출 부문
장이모우 장예모 :  감독
 
각본 부문
장이모우 장예모 :  각본
Wang Bin  :  각본
 
촬영 부문
크리스토퍼 도일 두가풍 :  촬영
허우 용 Yong Hou :  촬영
 
제작 부문
Zhenyan Zhang  :  제작팀장
윌리암 콩 William Kong :  제작
장이모우 장예모 :  제작
 
음악 부문
탄 둔 Tan Dun :  음악
 
프로덕션 디자인 부문
후오 팅샤오 Tingxiao Huo :  미술
Zhenzhou Yi  :  미술
 
스턴트 부문
정소동  :  무술감독
 
의상 부문
와다 에미 Emi Wada :  의상
 
편집 부문
임안아  :  편집
Ru Zhai  :  편집

Posted by pe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