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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13 첸 카이거(陳凱歌)
  2. 2007.10.13 장이모우 張藝謨, Yimou Zhang
  3. 2007.09.14 루이스 부뉘엘
이미지들2007. 10. 13. 02:48

예전에 썼던 글 정리중...


첸 카이거(陳凱歌,1952.8.12-)

 

 

첸카이거는 장이모우와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 중에 하나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장이모우 보다는 첸카이거를 좋아한다. 첸카이거는 한 때 지나치게 문화혁명 시대에 집착한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면이 그의 매력이다. 그는 문화혁명 때 홍위병으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며, 장이모우처럼 하방의 경험도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방이란 모택동이 문화혁명 시기에 광분에 빠진 홍위병들을 인민으로 배워야 한다는 명분 아래 지방으로 보낸 것을 의미한다.) 그는 초기 3부작 <황토지 黃土地>(1984), <대열병 大閱兵>(1985), <아이들의 왕 孩子王>(1987)을 중국 현대사에 대한 지적인 접근을 하였다.

 

그의 초기 3편의 작품 중에서 그의 데뷔작인 <황토지>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1939년 팔로군의 한 병사가 민요를 수집하기 위해 산시성의 한 마을에 도착한다. 이후 한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이 병사는 그 소녀에게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는 연안에서 여성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얘기를 해준다.  이 얘기를 들은 소녀는 병사에게 자신을 연안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병사는 군대의 규율을 이유로 거절한다. 하지만 상부의 허락을 받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소녀 곁을 떠난다. 이후 소녀는 연안으로 가기 위해 채비를 하고 마을을 떠나며, 공산당에 대한 찬가를 부른다. 하지만 소녀가 부르는 노래는 마을이 물에 잠기는 소리에 점점 작아지고, 끝내 사라져 버린다. 공산당에 대한 축가가 점점 희미해져,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도 당시 중국 공산당의 거점인 연안으로 가는 시점에서 말이다. 병사가 소녀에게 약속을 하고 떠날 때, 소녀는 병사에게 묻는다. 군율을 바꿀 수없느냐고, 하지만 한낱 병사에게 그런 힘이 있겠는가. 결국 가서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를 세계적으로 알린 <패왕별희>로 넘어가 보자. <패왕별희>는 로맨스를 담고 있는듯 하지만,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들의 광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홍위병들의 광기 이면에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그 이데올로기는 바로 중국 공산당에 있다. 첸카이거는 직접적으로 그런 면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영화를 통해 말없이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첸카이거는 초기 3부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96년 작품인 <풍월>은 첸카이거가 형식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게 했다. 하지만 옴니버스 영화 <텐미니츠 트럼펫>의 마지막 편과, <투게더>에서 보여준 그의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는 중국의 현재 모습에 접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찾으려 한다. 물론 최근 그의 작품들은 초기작에서 보여주던 거장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초기 3부작과 <패왕별희> 이후, 상업적으로 돌아섰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세계는 중국으로부터 멀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 그는 초기의 모습에서 보여주던 무거운 목소리가 아닌 보다 가벼운 목소리로 중국을 보여주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그의 변화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의 변화가 긍정적이라면, 그는 세계적인 감독임은 물론 중국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p.s  누가 중국 공산당의 연안시대부터 문화대혁명 시기의 영화는 '무'라고 얘기했던가. 그 말을 완전히 긍정할 수 없지만, 이데올로기가 쓸어 버린 것은 참 많다. 그들이 말한 신성한 혁명이 파괴한 것도 참 많다. 그러기에 <황토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중국영화를 세계에 알린 것도, 알린 것이 겠거니와 혁명 시대의 영화에도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으니 말이다. <황토지>에서 자주 보이는 깊은 원근감이나 긴 호흡은 혁명의 미학 보다 전통 미학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고 할까.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기법 별로 안 좋아 하지만.

그런데 이런 영화 찍었던 첸카이거가 요즘은 자신의 명성에 대한 중압감이 큰 듯 한다. 자유를 말하고 싶었다는 <무극>만 봐도 그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갈 정도이니까. 그에 반면 장이모우는 잘 나가듯 싶다. <무극>과 비슷한 시점에 개봉한 <천리주단기> 호평을 받은 것도 그렇고, 최근 2008 북경올림픽 총감독을 맡은 것도 그렇다. 물론 <무극>은 흥행에 성공했고, <천리주단기>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요즘 첸카이거와 장이모우를 보면 <황토지>를 같이 찍었다는 사실이 참 재밌게 다가온다.

 

 

by 유쾌한씨

Posted by pekin
영화2007. 10. 13. 02:46
예전에 썼던 글 정리중.



장이모우 張藝謨, Yimou Zhang

 

 

(1951.11. 14-)


 중국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독은 장이모우와 첸카이거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이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 아니듯, 장이모우 첸카이거도 마찬가지다. 이 둘은 중국 영화계에서 크게 평가를 받으면서도, 대중들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국적인 소재를 다루는 그들의 영화들이 중국대중들에게는 지루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상을 타기 위해 일부러 중국적인 것을 골라 만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임에는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이번 호에서는 장이모우에 대해서, 다음 호에서는 첸카이거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장이모우는 문화혁명의 여파로 산시성 농촌의 한 공장에서 10여년을 보냈다. 문화혁명 때 해방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직까지 농촌에 남아있었지만 그는 1978년 북경전영학원에 입학했다. 이후 첸카이거의 초기작 <황토지>와 <대열병>등에서 촬영감독을 맡으며, 영화계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수수밭>(1987년)이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타면서 세계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한다. 문화혁명의 혼란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내용적인 면보다도 붉은색으로 일관된 영상미를 강조한 영화다. 색에 대한 그의 감각은 <홍등>, <영웅>에서 큰 두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붉은 수수밭> 이후 지나친 형식미에 치우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후 대표적인 감독들이 보이는 현상 중에 하나다. 일종의 거작과 거장에 대한 강박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장이모는 형식적인 미를 탈피해 <귀주이야기>와 <인생> 등을 제작한다. 이 두 작품은 그가 미시적인 눈을 가지고 중국의 현실에 다가간 작품들이다. <인생>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타면서, 그는 3대 영화제 모두 석권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그는 다시 한 번 전환기를 맡는데, 그 전환기에 있는 작품이 <와호장룡>과 <영웅>이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보여지듯, 영상미를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보여주는 영상미는 중국의 전통적인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 장이모가 보여주는 세계가 중국적인가 하는 사실이다. 그가 그리는 중국적인 세계는 현실을 사는 중국인들의 세계가 아니라,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중국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그를 거장이라 할 수 있지만, 그가 보여주는 세계가 포장된 세계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와호장룡>의 경우는 깊은 철학을 보여준다고 얘기하지만, 그 철학은 누구에게 있는 것 인가. 그 철학이 중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세계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의 영화를 볼 때 주의해야 할 사실 중에 하나이다.


 

2005. 3 by 유쾌한씨

FILMOGRAPHY



배우  
 
1. 유화호호설 (有話好好說, 1997)
2. 진용 (秦俑, 1989)… 몽천방 역
3. 붉은 수수밭 (紅高梁, 1988)
 


감독

1. 단기,천리를 달리다 (單騎, 千里を走る, 2005)
2. 연인 (十面埋伏, 2004)
3. 영웅 (英雄, 2002)
4. 행복한 날들 (幸福時光, 2001)
5. 책상서랍 속의 동화 (一個都不稜少, 1999)
6. 집으로 가는 길 (我的父親母親, 1999)
7. 유화호호설 (有話好好說, 1997)
8. 뤼미에르와 친구들 (Lumière et compagnie, 1996)
9. 인생 (人生, 1995)
10. 트라이어드 (搖?搖, 搖到外婆橋, 1995)
11. 귀주이야기 (秋菊打官司, 1992)
12. 홍등 (大紅燈籠高高掛, 1991)
13. 국두 (菊豆, 1990)
14. 대호미주표 (代號美洲豹, 1989)
15. 붉은 수수밭 (紅高梁, 1988)
 
 
 제작  
 
1. 단기, 천리를 달리다 (單騎, 千里を走る, 2005)
2. 연인 (十面埋伏, 2004)
3. 영웅 (英雄, 2002)
 
 
 각본  
 
1. 단기, 천리를 달리다 (單騎, 千里を走る, 2005)
2. 연인 (十面埋伏, 2004)
3. 영웅 (英雄, 2002)
4. 화혼 (畵魂, 1993)
 
 
 촬영  
 
1. 대열병 (大閱兵, 1986)
2. 황토지 (黃土地, 1984)

Posted by pekin
영화2007. 9. 14. 00:16
            
       Luis Bunuel


 

"스크린의 흰 막은 빛을 반사시킬 수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우주가 폭발할 것이다."
                                                                                                                    - 루이스 브뉘엘



“스페인 최고의 감독은 누구인가?” 묻는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루이스 부뉘엘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세계 영화사적으로나 스페인 영화사적으로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그의 영화는 실로 충격 그 자체이다. 솔직히 말로 그의 영화를 설명해서는 그 충격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필자가 그의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에 열린 <스페인 영화 페스티발>에서 였다. 그곳에서 <안달루시아의 개>라는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1929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에 흥미도 느끼지 못했지만,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이 영화의 도입부를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보았다. 만들어진 70년이나 지난 영화이니 충격 이래봐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보고 난 후 영화가 준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한 여자의 눈이 클로즈업되고 관객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하나의 면도칼이 다가와 그녀의 눈을 잘라낸다. 어떠한 색채와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진행된다.

 

<안달루시아의 개>의 도입부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과감한 표현방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현대의 어떤 영화 중에서도 그보다 충격적인 장면을 보지 못했다. 이 영화의 도입부는 충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관객의 시선을 파괴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관객의 시선을 외면한 영화는 소통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도입부는 관객의 시선을 파괴해 버린다. 관객들은 이미 그들의 만들어진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며, 보는 즐거움에 의해 영화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비쳐진 세계 이면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러한 것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니면 관객이 영화를 바라보는데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루이스 부뉘엘은 전자의 방법을 택함으로써, 현실 너머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충격으로 점철되면서도,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은 그의 영화를 바라보면서 깨져 나가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실재를 알 수가 없다. 총 12컷으로 만들어진 <안달루시아의 개>가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제목만 봐도 그렇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 남부 지방으로 이슬람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집시들의 문화 또한 스며들어간 지역이기도 하다. 안달루시아의 개라는 제목이 이 영화에 갖는 의미를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일종의 상징이라 생각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스페인 친구 몇몇에게 물어 봤지만, 그들도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파헤쳐 들어가다 보면 더욱 복잡해질 뿐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설명할 것이 없는 단순한 이치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루이스 부뉘엘 영화의 매력이다. 마치 보르헤스의 소설과도 같다. 미로를 따라가다 보면 공허한 원형에 도달하게 된다. 그 원형은 닫힌 구조가 아니다.  그의 영화는 우연과 충격으로 관객에게 얘기하면서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그것이 바로 현실을 눈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의 영화에서 보여 지는 결말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종국에 이르러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수한 선택의 가능성을 만들어 놓는다. 이것이 결말인가 하는 사이에 영화는 끝나버린다. 한 번쯤 그의 영화를 통해,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를 걸어 보길 권한다.



유쾌한씨, 1105호 단대신문 칼럼.


Posted by pe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