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들2007. 10. 13. 02:48

예전에 썼던 글 정리중...


첸 카이거(陳凱歌,1952.8.12-)

 

 

첸카이거는 장이모우와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 중에 하나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장이모우 보다는 첸카이거를 좋아한다. 첸카이거는 한 때 지나치게 문화혁명 시대에 집착한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면이 그의 매력이다. 그는 문화혁명 때 홍위병으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며, 장이모우처럼 하방의 경험도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방이란 모택동이 문화혁명 시기에 광분에 빠진 홍위병들을 인민으로 배워야 한다는 명분 아래 지방으로 보낸 것을 의미한다.) 그는 초기 3부작 <황토지 黃土地>(1984), <대열병 大閱兵>(1985), <아이들의 왕 孩子王>(1987)을 중국 현대사에 대한 지적인 접근을 하였다.

 

그의 초기 3편의 작품 중에서 그의 데뷔작인 <황토지>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1939년 팔로군의 한 병사가 민요를 수집하기 위해 산시성의 한 마을에 도착한다. 이후 한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이 병사는 그 소녀에게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는 연안에서 여성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얘기를 해준다.  이 얘기를 들은 소녀는 병사에게 자신을 연안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병사는 군대의 규율을 이유로 거절한다. 하지만 상부의 허락을 받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소녀 곁을 떠난다. 이후 소녀는 연안으로 가기 위해 채비를 하고 마을을 떠나며, 공산당에 대한 찬가를 부른다. 하지만 소녀가 부르는 노래는 마을이 물에 잠기는 소리에 점점 작아지고, 끝내 사라져 버린다. 공산당에 대한 축가가 점점 희미해져,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도 당시 중국 공산당의 거점인 연안으로 가는 시점에서 말이다. 병사가 소녀에게 약속을 하고 떠날 때, 소녀는 병사에게 묻는다. 군율을 바꿀 수없느냐고, 하지만 한낱 병사에게 그런 힘이 있겠는가. 결국 가서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를 세계적으로 알린 <패왕별희>로 넘어가 보자. <패왕별희>는 로맨스를 담고 있는듯 하지만,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들의 광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홍위병들의 광기 이면에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그 이데올로기는 바로 중국 공산당에 있다. 첸카이거는 직접적으로 그런 면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영화를 통해 말없이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첸카이거는 초기 3부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96년 작품인 <풍월>은 첸카이거가 형식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게 했다. 하지만 옴니버스 영화 <텐미니츠 트럼펫>의 마지막 편과, <투게더>에서 보여준 그의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는 중국의 현재 모습에 접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찾으려 한다. 물론 최근 그의 작품들은 초기작에서 보여주던 거장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초기 3부작과 <패왕별희> 이후, 상업적으로 돌아섰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세계는 중국으로부터 멀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 그는 초기의 모습에서 보여주던 무거운 목소리가 아닌 보다 가벼운 목소리로 중국을 보여주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그의 변화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의 변화가 긍정적이라면, 그는 세계적인 감독임은 물론 중국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p.s  누가 중국 공산당의 연안시대부터 문화대혁명 시기의 영화는 '무'라고 얘기했던가. 그 말을 완전히 긍정할 수 없지만, 이데올로기가 쓸어 버린 것은 참 많다. 그들이 말한 신성한 혁명이 파괴한 것도 참 많다. 그러기에 <황토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중국영화를 세계에 알린 것도, 알린 것이 겠거니와 혁명 시대의 영화에도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으니 말이다. <황토지>에서 자주 보이는 깊은 원근감이나 긴 호흡은 혁명의 미학 보다 전통 미학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고 할까.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기법 별로 안 좋아 하지만.

그런데 이런 영화 찍었던 첸카이거가 요즘은 자신의 명성에 대한 중압감이 큰 듯 한다. 자유를 말하고 싶었다는 <무극>만 봐도 그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갈 정도이니까. 그에 반면 장이모우는 잘 나가듯 싶다. <무극>과 비슷한 시점에 개봉한 <천리주단기> 호평을 받은 것도 그렇고, 최근 2008 북경올림픽 총감독을 맡은 것도 그렇다. 물론 <무극>은 흥행에 성공했고, <천리주단기>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요즘 첸카이거와 장이모우를 보면 <황토지>를 같이 찍었다는 사실이 참 재밌게 다가온다.

 

 

by 유쾌한씨

Posted by pe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