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07. 9. 14. 00:16
            
       Luis Bunuel


 

"스크린의 흰 막은 빛을 반사시킬 수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우주가 폭발할 것이다."
                                                                                                                    - 루이스 브뉘엘



“스페인 최고의 감독은 누구인가?” 묻는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루이스 부뉘엘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세계 영화사적으로나 스페인 영화사적으로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그의 영화는 실로 충격 그 자체이다. 솔직히 말로 그의 영화를 설명해서는 그 충격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필자가 그의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에 열린 <스페인 영화 페스티발>에서 였다. 그곳에서 <안달루시아의 개>라는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1929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에 흥미도 느끼지 못했지만,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이 영화의 도입부를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보았다. 만들어진 70년이나 지난 영화이니 충격 이래봐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보고 난 후 영화가 준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한 여자의 눈이 클로즈업되고 관객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하나의 면도칼이 다가와 그녀의 눈을 잘라낸다. 어떠한 색채와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진행된다.

 

<안달루시아의 개>의 도입부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과감한 표현방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현대의 어떤 영화 중에서도 그보다 충격적인 장면을 보지 못했다. 이 영화의 도입부는 충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관객의 시선을 파괴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관객의 시선을 외면한 영화는 소통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도입부는 관객의 시선을 파괴해 버린다. 관객들은 이미 그들의 만들어진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며, 보는 즐거움에 의해 영화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비쳐진 세계 이면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러한 것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니면 관객이 영화를 바라보는데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루이스 부뉘엘은 전자의 방법을 택함으로써, 현실 너머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충격으로 점철되면서도,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은 그의 영화를 바라보면서 깨져 나가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실재를 알 수가 없다. 총 12컷으로 만들어진 <안달루시아의 개>가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제목만 봐도 그렇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 남부 지방으로 이슬람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집시들의 문화 또한 스며들어간 지역이기도 하다. 안달루시아의 개라는 제목이 이 영화에 갖는 의미를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일종의 상징이라 생각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스페인 친구 몇몇에게 물어 봤지만, 그들도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파헤쳐 들어가다 보면 더욱 복잡해질 뿐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설명할 것이 없는 단순한 이치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루이스 부뉘엘 영화의 매력이다. 마치 보르헤스의 소설과도 같다. 미로를 따라가다 보면 공허한 원형에 도달하게 된다. 그 원형은 닫힌 구조가 아니다.  그의 영화는 우연과 충격으로 관객에게 얘기하면서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그것이 바로 현실을 눈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의 영화에서 보여 지는 결말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종국에 이르러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수한 선택의 가능성을 만들어 놓는다. 이것이 결말인가 하는 사이에 영화는 끝나버린다. 한 번쯤 그의 영화를 통해,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를 걸어 보길 권한다.



유쾌한씨, 1105호 단대신문 칼럼.


Posted by pe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