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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18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1
영화2007. 9. 18. 15:10

예전에 썼던 글 정리중...


Hable con ella


얼마 전 스페인에서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신작 <나쁜 교육(La Mala Educación)>이 개봉했다. 한국에서 그의 영화를 접할 때는, 그의 영화가 지닌 대중성을 의심했다. 그의 영화는 초반에 관객의 흥미를 이끌어 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해하기 힘든 세계로 빠져든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야기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서사구조를 띄지 않는다. 스페인에서 그가 상당한 흥행감독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것이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심을 했다. 하지만 필자가 그의 신작을 접하면서 이러한 의심은 사라졌다. 곳곳에 붙은 그의 영화 포스터와 상영관을 채운 관객들은 그의 인기를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상당수의 영화를 찍었지만 한국에서 접해볼 수 있는 영화는 몇 편 되지 않는다. 프랑코 독재 정권이 끝나면서 찍은 그의 영화들은 그동안 표현할 수 없었던 욕망의 분출, 그 자체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찍은 그의 영화에서는 강렬한 욕망은 느낄 수 없다. 물론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그녀에게(2002)>, <나쁜 교육(2004)>은 하나같이 걸작들이다. 하지만 알모도바르는 이제 조용히 말할 수 있는 법을 알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쉽게 구해 볼 수 있는 그의 영화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과 <그녀에게>일 것이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 깐느를 휩쓴 것은 괜한 허풍이 아니다. 그 영화는 그의 영화 중 가장 잘 다듬어진 영화이며 그의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영화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영화를 처음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녀에게>를 권한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상당히 난해한 면을 지니기 때문이다. 반면 <그녀에게> 한국에서도 상당수 매니아를 지니고 있을 만큼, 어느 정도 이해의 범위 안에 존재한다. 이해의 범위라는 것이 곧 관객의 수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스페인에서 스페인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이해하기 힘든 문화의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사랑의 소통에 관한 영화이다. 남자 간호사 베니그니는 발레리나 알리샤를 사랑한다. 하지만 소심한 베니그니는 알리샤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 그저 그의 내면 속에 사랑을 숨기고 바라 볼 뿐이다. 하지만 알리샤가 코마 상태에 빠지고, 그가 일하는 병원에 입원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그의 모든 것을 알리샤에게 보낸다. 이것은 일반적이지 못한, 일방향 소통이다. 이번엔 영화 속의 다른 축 마르코를 보자. 기자인 마르코는 TV를 통해 투우사 리디아를 우연히 접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는 기사를 통해, 그녀와 얘기하게 된다. 이미 리디아는 사랑의 아픔을 지니고 있고, 투우 경기 중 죽음에 이르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리디아도 죽음에 이르기 보다는 알리샤처럼 코마에 빠진다. 이때 마르코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눈물을 흘리는 일 뿐이다. 영화 속에서 마르코의 눈물은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일방향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슬픔이다. 이 슬픔은 베니그니와 마르코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극대화된다. 하지만, 똑같은 슬픔을 지닌 둘의 만남은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 격한 슬픔이 밀려온다. <그녀에게>는 바로 그 슬픔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알리샤의 발레 선생님을 유심히 보기 권한다. 그녀가 바로 찰리 채플린의 딸인데,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Posted by pekin